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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상

 

김태연: 가상생명과 창조적 서사 [인공의 섬 전시에 관하여]

2016. 12. 13 − 2017. 1. 16 / 과학예술 융·복합전시(GAS2016)로 과학창의재단

김태연의 작업은 회화로부터 출발한다. 2000년대 초 김태연의 초기 회화는 둥글고 가느다란 선들과 그것들을 채우는 평면적이고 따듯한 색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이 그림들은 대범한 추상성과 간결한 구조 뿐 아니라 독특하고 낙관적인 색채들 때문에 당시에는 ‘팝 아트’로 분류될 수 있었다. 다만 이 당시의 그림들에서도 이미 부드러운 운동성을 지닌 윤곽선들과 볼륨들 상호 간의 관계들이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태들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형태들은 이후의 김태연의 회화 속에서 보다 분명한 성격을 드러내 왔다. 우선 수없이 많은 부드러운 마디들로 이루어진 선형동물이나 편형동물들을 연상시키는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들은 좀 더 확대해서 본다면 증식하거나 변형하는 단백질, 유전자 혹은 미증유의 고분자화합물이나 원시적인 세포들의 군집 혹은 그러한 생물을 떠올린다. 이 형태들은 ‘제목’을 통해 회화에서는 다양한 감정들 혹은 사건들과 조응하는 방식으로 그려졌으며, 입체의 경우에는 주로 벽에 걸리는 부조로 제작되었다.

최근 그의 작업은 회화적 공간 속의 유기적 형태들이 연상시키는 것, 예컨대 세포, 단백질, 유기화합물, 미생물 등의 형태들에 대한 구체적 인용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형태의 차용에만 그치지 않고 유기적 형태들의 출현에 간여하는 물리적 혹은 생물학적, 화학적 계기들을 연구하는 방향을 포함하게 된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전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측면을 지닌다. 우리는 예술적 사유에서 과학적 호기심에 이르는 창작과정을 오늘날 적지 않은 사례들 속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회화의 내적 전개와 물질성에 대한 사유 속에서 이루어질 때, 여기서는 흥미로운 갈래가 나타난다.

과학적 사실들의 인용 혹은 과학영역으로의 확장은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이를 몰고 온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두 영역을

잇기 위한 개념적 축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김태연은 이를 위해 ‘가상생물’이라는 범주를 제시하였다. ‘가상생물’이라는 주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생물을 종 단위에서 연결해서 변형시키고자 하는 상상은 고대부터 있어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반인반수인 사티로스, 켄타우로스, 메두사, 미노타우르스 등은 모두 인간과 동물의 형태가 결합된 변종들이다. 키메라와 같이 사자, 양, 뱀 등이 합쳐진 변종들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용이나 산해경의 동물들이 그런 것들이다. 가상생물들은 이렇게 종의 형태 결합으로 나타남으로써 문학적, 신화적 서사들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성종이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실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알레고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반면 종의 결합이 염색체 수준에서 이루어질 경우 ‘가상생물’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닌 잠재적 현실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가상이 현실을 넘어선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염색체의 변형은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카타라헤나 의정서’는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는 국제협약이고, 한국에는 법률 9428호에서 유전자변형 생물체에 대한 규제를 다루고 있다.) 생물학적 위험bio-hasard에 대한 공포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문학작품, 영화 등에서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산행’과 같은 좀비영화를 통해 그 치명적 위험에 대한 공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과학적 공포의 서사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고,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곧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고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 둘러쌀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물에 염색체 수준에서 개입하는 작업은 지난 십 여 년간 상당히 이루어져 왔다. 유전자 변형이나 새로운 유형의 종을 만들어내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이루어져 왔다. 시카고 대학의 에두아르도 카츠Edouardo Kac는 2000년에 토끼의 염색체에 형광물질을 주입해 형광 특성을 지닌 토끼를 예술작품으로 만든 바도 있다. ‘알바’라는 이름의 이 토끼는 자외선을 쬐면 녹색의 형광빛으로 반응했는데 이는 최초로 염색체 변형 예술로 알려졌다. 오를랑Orlan 역시 서호주대학 생체해부학과의 SymbiotiA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피부세포를 주입한 식물을 재배한 뒤 그것으로 섬유를 짜서 만든 <광대의 외투 Le manteau d’Arlequin>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그의 작업은 스스로를 ‘여성’에서 일종의 초월적 존재로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녀의 이름 ‘오를랑’은 바로 이 무한히 확장되는 주체에 붙여진 것이다. ‘가상생물’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과 연구는 그것이 함축하는 발전가능성과 이익의 잠재성 때문에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영구적 상태로 받아들이려는 관성만 억누를 수 있다면 과학적 전개가 몰고 오는 변화를 긍정적인 이점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의 신체는 이미 상당 부분 사이보그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으며, 곧 로봇과 사이보그의 구분이 무의미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보그의 수준에서 보면 정보단말기, 통신수단, 근육, 심지어 두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능들이 기계적 혹은 전자적 방식으로 우리의 신체와 삶에 통합되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신체는 거대한 서버들과 연동하거나 보조근육, 보조두뇌, 보조장기 등로 기계화되어 갈 것이다.

반면 기계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인간화되거나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놀라운 과학적 전개는 생물학적 최소단위인 세포, 염색체, 단백질화합물 등을 기계적으로 재현해내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재구성, 변형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염색체지도가 완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술이 조만간 인간의 존재를 근본에서부터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생물학–기계–정보의 결합을 통해 엄청나게 진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는 예술, 윤리, 철학과 같은 영역들 또한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띨 것이다.

김태연의 작업은 개별적 상상의 가시화라기보다는 거대한 과학적, 예술적 진화의 과정을 의미화하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진화를 전제로 하는 관점을 일종의 목적론Teleonomy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목적론이란 미래의 시점으로부터 현재의 의의를 역추론하는 것이다. 미래와 관련된 대부분의 이론들이 그러하듯 목적론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현재의 미비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상상하거나, 그러한 상상에 의존하여 현재에 대한 편견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세계의 역사는 상당 부분 목적론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아왔다. 실제로 많은 종교나 정치적 도그마들은 이러한 목적론에 의거하여 보장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곤 한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와 같은 내세관을 지닌 종교들이나 맑시즘, 자본주의적 결정론과 같은 역사주의적 이론들은 모두 목적론이다. 이러한 현상은 ‘예측’이라는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만이 일으킬 수 있는 독특한 버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론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세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추론한다. 과학적 목적론은 우리의 집단적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실현될 것이라 예측되는 사실들로 구성된다. 지난 몇 십 년 동안에 일어난 과학기술의 가속적 발전을 염두에 둔다면 과학적 목적론은 다른 어떤 목적론들(종교적, 정치적, 이념적)보다도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목적론의 가장 최종적인 형태는 유토피아다. 세계가 그것을 지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학주의적 목적론은 과학기술이 우리의 모든 욕망과 이상, 꿈과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향해 나아간다. 실제로 그러한 목적론의 관점에서 500년이나 1000년 혹은 그 이상의 미래를 설명하는 서사들도 있다. 피터 로리의 ‘미래의 역사’나 미치오 카쿠가 ‘평행이론’에서 인용한 ‘카르다쇼프 척도’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 현재의 많은 문제들이 근미래에 해결되고, 생명은 오를랑의 전개에서 보듯 과학기술을 통해 끝없이 자신을 확장하여 결국 더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과학적 목적론이 제시하는 미래를 염두에 둔다면 현재의 예술은 전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르네상스를 돌아보듯, 미래의 세계가 현재의 예술을 돌아보게 될 때 그 의의가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미래에 현재의 예술은 두 가지 점에서 의의를 지닐 것이다. 첫째는 미래에까지 변함없이 남게 될 높은 수준의 추상적, 조형적 정신이며, 둘째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단계의 역사를 가장 잘 드러낼 선구적 태도와 방법론이다. 예술작품은 시간을 반복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현재화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박물관의 아카이브와 다르다. 예술작품의 생산이 도구적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것이 시간과 기억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예술과 과학의 접점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김태연의 프로젝트는 생명현상과 그것에 대한 과학적 서술, 그리고 당면한 세계의 변화를 통해 현실이 어떻게 재구성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그것을 회화와 건축과 생물학, 신화적 서사와 일상적 언어 등과 같은 과감한 조합을 통해 구현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회화적 충동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에 제공하는 첨예한 가능성들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의 예술적 창조가 독보적인 프로그램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예술가가 자신이 만든 우주 속에서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 소우주 안에서 예술가는 스스로 유일한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Yoo, Jinsang

Kim, Tae Yeun: A Virtual Life Yoo, Jinsang and a Creative Narrative

Review on Artificial Island 2016. 12. 13 − 2017. 1. 16

Tae Yeun Kim’s work first started with paintings. Her early paintings during the early 2000’s were composed with round, slender lines and flat, warm colors that fill the sections among these lines. Due to their bold abstractness and simple structure in addition to uniquely optimistic colors, these paintings could be classified as ‘pop-art’ at that time. We can see in these works already, however, a world view composed with organic shapes that associate us with the mutual relationships between the smoothly moving lines and their volumes. These shapes have exhibited clearer properties in later paintings of Tae Yeun Kim. Above all, we can find the shapes that remind us of eelworms or flatworms with numerous soft joints. These look like proliferating or transforming proteins, genes or unheard- of a highly polymerized compound, a group of primordial cells or an organism with such cells. These shapes have been either produced as relief to be hung in walls or painted to correspond with various emotions or events through their ‘titles.’

The artist’s recent works have spread by citing specifically what organic shapes would remind of something like cells, proteins, organic compounds, microbes in the space of her paintings. It developed more toward a direction of investigating physical, biological, or chemical momentums that engage in the advent of organic forms than mere an appropriation of their appearances. Looking pertinent at a glance, this development yet has an exceptional side, though. We can observe the creation processes from artistic thoughts to scientific curiosities in considerable instances. But interesting aspects arise here only when they are done in the internal development of paintings and within the contemplation on materiality.

The citation of scientific facts or the expansion toward the science’s territory brings a drastic transition of a paradigm. Here arises an importance of a conceptual axis to connect these two areas. Kim Taeyoun suggests a category of a ‘virtual life’ for it. The theme of ‘virtual lives’ is not so an innovative one; there have been imaginations, from ancient time, to transform living things by linking a species with another one. Half-man-half- beasts in ancient Greek myths such as Satyr, Centaur, Medusa, and Minotauer are all the mutants of human and animal forms. There is also a mutation like chimera, a complex being combined with lion, lamb, and snake; animals from the Classic of the Mountains and Seas or dragons from east or west, for example.

Appearing as the hybrid combinations like them, virtual organisms have played decisive roles in literary or mythical narratives. No one, however, takes them as existent in reality because they remain in an allegory only.

On the other hand, a ‘virtual life’ becomes a potential reality more than a mere metaphor when it is realized by the combinations of chromosomes among species. It is interpreted, above all, as a symptom that a virtual one outruns a reality.

Due to its great potential risks, the chromosome manipulation is strictly controlled in reality. (For instance, the ‘Cartagena Protocol’ is an international regulation to control the transboundary movements of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among nations, and Korea regulates them with the Act 9428.) The fear of bio-hazard has been expressed in numerous literary works and films; the horror of its fatal danger has been widely reproduced through the zombie movies like Train to Busan in Korea. The narratives of scientific horror are scary because it can really happen; they are telling the affairs with high probabilities. In other words, a moment that a virtual one substitutes the reality to surround us with a completely new reality is just around the corner. During the last decade, there have been lots of works which intervene in the chromosome of living organisms to create new types of species by gene variations. Edouardo Kac at the Chicago University once created an artwork in 2000 with a rabbit by injecting a fluorescent material into its chromosome. This bunny known as ‘Alba’ reacted to ultraviolet rays in green fluorescent light, which is considered as the first chromosomal aberration art. Orlan’s Le manteau d’Arlequin is a sort of fiber work which is made of a plant injected with her skin cell with the assistance of the SymbiotiA Institute of the College of Life and Physical Sciences at The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She practices her work within the process of sublimating herself from ‘a woman’ to a sort of transcendental existence. ‘Orlan’ is named to this very subject that is extended infinitely.

The scientific curiosity and investigation on ‘virtual lives’ will persist due to their implicative development possibility and potential benefits. Once we can restrain our inertia from taking our reality as a permanent one, we also can treat the changes driven by scientific unfolds as positive advantages. For example, our body already moves toward the form of a cyborg in many parts, so the distinction between a robot and a cyborg would become senseless. On the point of cyborg, we can see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functions from digital assistant and means of communication to muscles or even a brain, would be integrated into our bodies in mechanical or electronic ways. A human body will soon interwork with gigantic servers or be mechanized by bioartificial muscles, brains, and organs. On the contrary, a machine will get humanized or become a superior existence than a human being due to the develop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The most astounding scientific unfold will be made probably on the stage of mechanical embodiment and the free reorganization or transformation of the smallest biological units like cell, chromosome, protein compound, and so on. It is quite possible to predict that these technologies will soon change the human being from its root under the circumstances in which most chromosome maps have been completed. Such provinces as art, ethics, or philosophy also will acquire totally a new meaning where an evolution would be accelerated through the union of biology-technology-information.

Tae Yeun Kim’s work can be understood as signifying the process of colossal scientific and artistic evolution rather than the visualization of individual imagination. A standpoint presupposing this kind of evolution could be said as a sort of teleonomy, which infers the present meaning reversely from the future time. As most future theories, the teleology bears a danger in terms that it imagines unrisen events based on incomplete data of the present or produces prejudices on the present relying on such imaginations. The world’s history has been influenced by the teleology in considerable parts. As a matter of fact, many religious and political dogmas used to sacrifice the present for the nonguaranteed future. All the religions with afterlife views or the historical theories belong to the teleonomy, such as Christianity, Islam, Buddhism, or Marxism and capitalist determinism. This would be a unique ‘bug’ only caused by the human beings that have the intelligent ability of ‘prediction.’ Nevertheless, we incessantly evaluate and infer through this teleology, to which direction the present world would change. The scientific teleonomy consists of the predictable grounds that are expected to come true, mirroring our collective experience. When regarding the accelerated developments of scientific technology during the last several decades, the scientific teleology could be considered as more reliable than any other (religious, political, ideological) teleonomies. The final form of teleology is a utopia, since it sees the world as aiming it. The teleological scientism proceeds toward a faith that scientific technology would fulfill all the desire, ideal, and dream we pursue. There are narratives with such a teleology in practice that tries to explain the future later than five or ten hundred years: Peter Lorie’s History of the Future: A Chronology and Michio Kaku’s Kardashev Scale, for example. Many current problems get solved in the near future within their narratives, and lives endlessly extend theirselves to spread into wider cosmos through scientific technology as observed in Orlan’s instance.

Today’s art will have a completely different meaning when considering a future the scientific teleology suggests. It is something significant that will reveal itself when the future world will retrospect the art of these days like we look back the Renaissance. The present art will acquire a couple of significance in the future. One is an abstract and formative spirit in a high level that survives in the future; the other is the pioneering attitude and methodology that will luminate our contemporary stage in history in the best way. Art works are different from a mere archive in a museum in terms that they do not repeat the time only but also make it present without a pause. The fact that an art piece is not produced by instrumental necessities attributes to the point that it intrudes directly upon time and memory. The interface between art and science should include this very aspect.

Tae Yeun Kim’s project interests us in terms that it has a vision how the reality would be reconstructed through vital phenomena, scientific narration about them, and the world’s transition we face. It also has a meaningful significance because her project has embodied them with decisive combinations of biology, mythical narratives, or ordinary language with painting and architecture. Someone might be able to anticipate that Kim’s artistic creation would be completed as an unrivaled program in the voyage from the impulse to painting toward acute possibilities provided in reality. I would tell once and for all that the important issue here is how the artist will evolve to which direction in the cosmos she made. It is because an artist is the one and only Creator in that microcosmos.

All works © Taeyeun Kim 2018.

Please do not reproduce without the expressed written consent of TeaYeu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