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 Ye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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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유기체적 생명체의 시선적 발화
김태연의 그림은 납작한 평면의 화면 가득 채워진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그 조각보처럼 작은 색 면들은 특정한 형상을 재현하고 있는 듯도 하고 더러는 그것 자체로 자족적인 색채와 색으로 이루어진 색채 꼴들을 보여준다. 이 추상적인 ‘위장무늬’들은 마치 식물이나 곤충, 동물들의 보호색, 껍질과 피부를 떠올려준다. 그것들이 화면 가득 채워나가고 증식해나간다. 생각해보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구상에 서식하면서 그에 적합한 형태와 색채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왔고 보존해왔을 것이다. 그 개별적 생명존재의 모양과 색채는 그런 면에서 생존법칙의 결과물이자 신비스러운 생명작용의 소산인 셈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나가면서 목숨을 연명하고 유지하고 계승한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과제이자 숙명은 아닐까?
그것을 본능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 자연스레 유전적으로 체득된 , 일정한 코드에 따른 순종일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생명체들은 그토록 많은 시간 아래 길들여진 회로/틀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먹고 자고 무언인가를 욕망하고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그 저간에 작동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다름 아닌 생명의 신비일 것이다.
김태연의 그림에는 의인화된 생명체가 몸통과 온갖 촉수로 세상 밖을 향해있다. 그 존재는 외부세계에서 자신을 완강하게 보호하고 보존하며 지킨다. 나무나 인삼, 상상으로 구현한 식물 혹은 곤충과 갑각류들이다. 그것은 작가의 분신이자 자신의 은유로 등장한 생명체다. 외부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다분히 심리적인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부감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혼자 남은 방안에서 장롱이나 책상 밑 혹은 구석진 곳에 숨어 안락한 시간을 보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경험했었을 이 일은 공포와 불안, 부모의 부재에 따른 심리적 결핍과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일텐데 작가는 그 원초적 경험을 현재의 그림으로 서사화 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에게 그림 그리기는 그 상흔, 트라우마의 치유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화면은 한 치의 여백이나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간공포증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모든 것은 색채와 문양으로 감싸지고 있다. 보호색이나 위장용 문양이 그것이다. 주어진 평면, 그림의 세계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포비아’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연약한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그림 속의 대상들은 한결같이 동. 식물의 외피를 두른 인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두 눈은 끊임없이 밖을 향해 있다. 한 쪽으로 쏠린 두 눈, 시선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시선이란 생물학적으로 말해보면 두 개의 안구가 하나의 대상을 향해 초점을 맞추는 행위를 말한다. 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시선은 눈이라는 대상의 어떤 성질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시선은 지각이고 인식을 말한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게에서 항상 그 시선이 문제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타자와의 관계는 본원적으로 갈등의 관계다. 이 세계는 이미 타인이 존재하는 세계, 다시 말해 내가 타인에 대해 잉여적인 존재인 그런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 속 시선은 항상 타인에 대해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지니는 그런 시선의 노출이다.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 상징인 셈이다. 또한 무수한 촉수 같은 뿌리나 줄기, 혹은 다지류의 발톱이나 더듬이 혹은 메두사의 머리, 뱀과 유사한 형상과 다채로운 색채는 자신을 보호하는 몸들이다. 그 몸은 촉각적이고 유동적이며 구분 없이 뒤섞여있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지 못하는 부유하는 존재의 은유이자(이는 아마도 일찍 한국을 떠나 인도와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경험과 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두르고 지워나가면서 마구 엉켜있는 삶을 암시한다. 그것은 세상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무수한 존재들과의 실타래 같은 인연이자 그것을 풀고 매듭을 짓고 또 부득이 얽혀야 하는 의미망을 지도처럼 보여준다.
또 하나 이 그림에는 세포나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인자들의 증식과 번식이 두드러지게 자리한다. 삶과 죽음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의 안쪽에 자리한 맹렬한 세포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가능할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로 붙어서 조금씩 자라고 시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나로서는 김태연의 그림에서 그런 생물학적인 도감을 만나는 느낌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의 발화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기계적 눈에 의해 드러난 세포나 균 같은 것이었다. 지나는 말로 작가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개의 죽음과 기생충을 보았던 충격을 말했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유선형의 단위들은 그런 것의 은유이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기이한 생명체의 변이, 변종들의 독특한 풍경을 본다. 그것은 상상으로 이룬 그림들이지만 그 안에는 또한 여성적인 감성과 페미니즘적 사유가 고스란히 숨 쉬는 편이다. 식물은 자웅동체라 한 몸에서 음양의 기본 질서를 몸소 체득한다. 그것은 다소 기이한 모호한 성의 지대다. 스스로 생명체를 길러 밖으로 내보내는 한편 생사를 반복하며 거듭 환생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한 곳에 붙박이로 살면서 외부세계를 끌어들이고 막아내면서 스스로 광합성을 해 살아가는 존재다. 동물성의 몸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이 식물성에는 여성과 공유하는 부분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물성의 육체가 가닿고자 하는 접점을 보여준다.
김태연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심리적 상흔 그리고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식물성의 사유를 마치 설화적 소재나 신화적 맥락을 서사화 한 것처럼 보여준다. 그 보여주는 방식은 밝고 경쾌한 색상들의 나열, 동화적이고 유아적인 그리기 방식, 친근한 형상과 장식적 패턴 등을 아우르면서 전개한다. 그것은 신체의 기억을 그리는 그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솔직한 발화이다. 시선의 발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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