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 Ye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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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진
[철학박사]
전도된 시각: 생명 내부로부터의 시선
[미미(微微)_diminutive 전시에 관하여]
2017. 4. 5 − 4. 11 / 갤러리 너트(gallery knot)
예술가로서 김태연을 오랫동안 사로 잡고 있는, 그래서 그가 십 수 년 집요하게 매달리는 문제가 있다. 그의 문제의식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어떤 것을 살아 있게 하는가? 이 질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이란 우리가 죽어 있다고 보는 물질, 나아가 그런 물질로 이뤄진 사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질문은 생명 안에서 생명의 본성을 찾으면 되지만, 전자의 물음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어떻게 어느 순간 어떤 이유에서 살아 있게 되는지의 과정과 그 형식을 포함한다. 어쨌건, 그는 그 자체로는 살아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회화와 조각적 회화 안에서 이 난제에 답하려 해 왔다. 김태연의 해법은 작업 초기부터 가상 생명Virtual Life이었다.
미디어 이론가 크리스토퍼 랭턴의 관점을 빌리면, 생명에 관한 탐구는 곧 생명 논리에 대한 탐구이며, 생명의 가능한 논리와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과정과 과정의 형식이다.” 즉 생명은 처음부터 물질이 아닌 어떤 것일 필요가 없으며, 물질이면서 특이한 과정과 형식을 보이는 것, 그런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과 같은 것이다. 그 힘은 생명 자신의 논리와 형식을 포함한다. 가상 생명이나 인공 생명론, 그리고 예술이 생명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특수한 생명의 논리와 형식에 기반을 둔 가상 생명을 창조함으로써 그런 논리와 형식을 감각적으로 가시화해왔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김태연의 작업도 크게 보아 이 부류에 속한 작업을 해왔다.
그는 2000년 초 생명의 본성이 무엇인지가 급박하고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후 줄곧 여러 예술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 문제에 매달려 왔다. 물론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에 있다. 초기 작업에선 의인화된 사물을 통해 유기체의 본성을 물었으며, 이후 생명의 공간적 조건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생명 고유의 특이한 형식, 생명의 시간적 조건, 즉 지노 타입에서 피노 타입으로 이어지는 생명 과정의 특이성, 생명의 미시적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추상화된 거시적 외형의 관계, 생명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창발 속성과 그 효과 등이 차례로 그의 관심을 끌었다. 예컨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형태들을 배면에 깔고 두세층의 반투명한 밀랍으로 레이어를 입힌 후 최종 표면을 유화로 마무리하는 회화 작업이나, 유기체적 가상 생명 형태를 한 FRP 소재 부조물 위에 유화로 채색한 작업들은 일련의 문제의식들의 종합 버전이다. 이 두 형태의 작업은 2014년 등장한 이래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그가 생물학자나 철학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감각들의 구체적인 시공간적 배열 안에서 문제의식을 처리해왔다는 점에서 예술가다. 그는 생명에 관한 과학적 검증이나 개념화된 이론 체계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는 다른 방식과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일상적 감각과 지각 방식을 전도함으로써 보이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제에 접근하는 고유한 시각성과 특이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이다. 작가 스스로 시사하고 있듯이, 그의 고유한 시각성을 ‘전도된 시각’이라 부를 수 있겠다.
전도된 시각은 근대적 의미의 인간중심주의적 시선, 과학적 합리성의 시선을 전도시켜 생명체 내부로부터 보려는 탈인간중심주의적de-anthropocentric 시선, 의식 안에 표상되는 생명의 거시적 외형에서 비표상적 미시 세계로의 이행, 내부에서 외부를 보고 규정하는 ‘안으로부터 보기seeing from within’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작가는 <내부와 표면의 경계가 없다>(2014), <주체가 전도되고 있다>(2014), <느끼지만 느끼지 못하는>(2015), <내부의 내부는 외부다>(2015),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2015), <나의, 나에게서 비롯되어>(2015) 등, 최근 몇 년 간의 작업에 이 전도된 시각성을 분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이미 사물과 물질에서 생명을 앗아가 버렸던 방식, 즉 근대 과학의 인간중심주의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 생명론에선 생명과 비생명이 자의적으로 구분되고 생명과 비생명의 건널 수 없는 경계가 만들어지며, 그런 경계는 창발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으로만 건널 수 있는 것으로 기술될 뿐이다. 그러나, 창발은 기실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으며 거시 세계의 몸과 정신,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을 미시 세계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 물질이 생명이거나 생명의 일부가 아니었다면 물질로부터 창발하는 생명은 또 다시 물질 바깥에 놓이게 될 것 아닌가. 생명을 둘러싼 이 풀리지 않는 숙제는 오로지 근대의 과학적 합리성이 사물에게서 빼앗았던 생명을 물질 그 자체에 되돌려 줌으로써, 생명을 생명체 안에서 보려는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즉 창발도 물질과 사물의 직접적 내부로부터 유래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는 김태연은 거시 세계의 현상을 규정 하는 인간적, 의식적, 표상적 시선을 미시 세계에 다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물질이나 생명체 내부로부터 거시적 외부로 향하도록 한다. 그래서 그의 전도된 감각, 즉 미시세계 내부의 감각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 같은 작은 거시세계로 보는 건 곤란하다. 거기엔 전도가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인간 주체, 또 다른 거시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의 전도된 시각은 미시적인 것들에 관한 우리의 시각이 아니고 미시적인 것들의 시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업을 볼 때, 미시 세계를 우리의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는 생각하기보다, 우리 자신이 그의 작품 안에 있는 개체들이 되어 느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시적 내부로부터의 시각은 우리와 같은 표상적 시각이 아니라 몸과 무의식의 직접적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문제적 상황을 만드는 건 대부분 전도된 상황이다. 라캉, 샤르트르, 레비나스를 비롯해 숱한 일화 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주체에게 그저 하나의 대상이었던 사물이 타자적 주체로서 우리를 응시하는 전도된 시각 속에서, 존스의 소설 <알류샨 삼부작>에서처럼 한낱 도구로서의 스패너가 정비공에게 돌연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전도된 감각을 느낀다. 주체건 타자건, 죽어 있는 사물이건 살아 있는 생명이건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지 않는다. 반면, 타자가 주체로, 동일화 작용에 포섭되던 대상이 그것을 거부하는 문제적 기호로, 사물이 생명으로, 혹은 반대로 생명이 사물로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김태연이 인공적으로 만든 사물들이 꿈틀대며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똑같이 언캐니의 전도된 감각을 느낀다.
그 사물들은 그들 자신의 내적 생명 원리에 따라 내부로부터 증식하고 자기조직화하며, 그 자신과 그의 일부에 유기적으로 반응할 뿐만 아니라 관람객인 우리, 전시 공간과 환경에도 반응한다. 그 반응은 내적이며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고, 반응은 그 자체로 유기체 내부와 외부 공간의 변화를 내포한다. 생명은 유기체이고, 유기체는 다른 사물을 자기화하고 환경과 공간을 자기의 목적에 맞게 변형하는 능력이 있다. 마찬가지로 김태연의 사물들도 전시장에 걸린 물질로서의 캔버스나 이미지가 아니라, 차라리 지금 막 전시장에 들어선 우리에게 반응하여 자발적으로 구석으로 모여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작가가 배치했다기보다 그들이 있고 싶어 하는 곳으로 모여 들었다. 전시장의 중심에 사물로서의 예술작품이 걸려 있길 바라는 건 공간에 대한 인간적 가치 평가와 의미 부여의 산물이겠지만, 중심에 노출되길 꺼려하고 서로 뭉쳐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은 건 그들의 마음이다. 김태연의 기존 작품들이 생명의 내적 논리와 형식적 조건을 그 내부로부터 탐색하던 것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환경에 대한 자발적 반응, 공간과 현실에 대한 변화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레디메이드 안경을 이용한 작업에서 감지되는 것처럼 다소 알레고리적인 작업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작업들도 넓게 보면 존재하지만 비가시적인 것,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것, 느낄 수 있지만 지각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문제시한다.
오랫동안 예술가의 임무는 바람직한 공적 표상을 질료를 빌려 감각적으로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있더라도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좋은 예술가와 그렇지 않은 예술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 왔다. 이 요구는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는 한, 이미지가 모호한 경험 내용을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응축한 것인 한, 그렇게 해서 이미지가 가진 추상적 집중의 힘이 존속하는 한 오래 계속될 것이다. 반면 오늘날 예술가들에게는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중요한 임무가 더해졌고, 그에 따라 전통적인 예술의 역할도 성격을 달리하게 됐다. 그들은 이제 낯설고 새로우며 그 낯섬과 새로움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낯선 감각은 사물이나 세계가 우리가 늘 보던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그런 감각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을 수 있는 문제적 상황에 우리를 쳐하게 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경험과 사고를 활성화한다. 사고는 여간해선 자신의 관성을 거스르지 않으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유의 사고가 창발할 공간을 열어준다. 그렇게 해서 예술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영역, 주어져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여기서 좋은 예술가의 기준은 그가 그 감각이 문제적 상황으로 여겨질 만큼 그 감각의 시공간적 배열을 선명하고 밀도 있게 구현할 수 있는가에 있다. 김태연은 이 점에서 전형적인 우리 시대 예술가이며, 문제와 낯선 감각을 잘 만들어 낼 줄 아는 이다.
Kyung-jin Cho
[PhD in Philosophy]
Perspective Inversed: A view from within Life
Review on Diminutive
2017. 4. 5 − 4. 11 / Gallery knot
There is a problem which has captivated Tae Yeun Kim the artist for more than a decade. Put most simply, the question is this: what makes a thing alive? This is a different question to asking what it is to be alive because that thing can be something we consider dead – or an object made of that substance which we consider dead.
The latter question can be answered by finding the essence of life within life; but the former includes the process, as well as its form, through which a dead thing becomes alive at a certain moment. Anyhow, Kim has tried to answer this difficult question through painting and sculptural painting which are considered, on their own, not alive. Tae Yeun Kim’s answer, from the very beginning of Kim’s work, has been virtual life.
The media theorist Christopher Langton argues that a study of life is a study of the logic of life; it is about finding logic and condition which make life possible. The essence of life ‘is not material but process and the form of the process.” Life needs not be something that is not material; it is material which shows a particular process and form – it is that power which enables such process. That power includes the logic and form of life itself. This is where virtual life or the theory of artificial life and art can engage with the question of life. These create a virtual life, based on the particular logic and form of lie, thereby sensually visualizing that logic and form. Tae Yeun Kim’s artistic works also belong in this category.
Kim came to the urgent and important question of the essence of life in early 2000; ever since, he has used various artistic approaches to wrestle with the question. The new exhibition is a continuation of such efforts. In his early works, Kim asked the essence of organic substance through personified objects. Later, he has worked on the spatial conditions of life and the particular form of life emerging from those conditions; temporal conditions of life – the particularity of life process going from genotype to phenotype; relationship between events occurring in the macro- interior of life and abstracted macro-exterior; emergence as the essential property of life and its effect. For instance, painting works which add semi-transparent wax layers over CG-generated forms with oil-colour finish, or works which cover FRP relief in the form of organic virtual life with oil-colour are comprehensive versions of such awareness. These works first emerged in 2014 and have continued since.
All of this may present Kim as a biologist or a philosopher. Of course, Kim, in that he has used detailed space-temporal arrangements of senses to act upon his awareness, is an artist. He seeks not scientific verification of life or conceptualized systems of theory; rather, he seeks to show, by inversing our ordinary senses and cognitive methods, that there can be different views of life. Moreover, Kim is an artist with a unique perspective and extraordinary senses about his question. As the artist himself implies, his unique view can be thought of as a ‘perspective inversed.’
This inversed perspective manifests itself in a anthropocentric view in the modern sense, de-anthropocentric view which seeks to see life from within by inversing the scientific, rational view, a journey from the macro-exterior of life symbolized in consciousness to non-symbolic macro-world, and ‘seeing from within’ which sees the exterior from the interior and defines it. For instance, the artists has clearly shown this inversed perspective in his works over the last few years; <There is no boundary between interior and surface (2014)>; <Agency is being inversed (2014)>; <Felt but unfelt (2015)>; <The interior of interior is exterior (2015)>; <A View of the Interior (2015)>; <My, of myself (2015)>; and so on. From early works, Kim was aware of the limits of seeing life from anthropocentric, rational perspective of modern science; for that is the way which took life out of objects and substance. In that theory of life, life and non-life are willingly distinguished and a boundary between life and non-life is formed; this boundary is simply described as something that can only be crossed through the mystic phenomenon of emergence. However, emergence in fact does not explain anything; it is merely transposing of the dichotomy of the macro-world, as with body-mind and material- mind, into macro-world. If a substance was not life or a part of life, then the life emerging from substance will once again lie outside of substance. This unresolved question of life restores life to objects which were deprived of life by modern scientific rationality; the only solution appears to be in trying to see life from within. In other words, emergence must come from substance and the direct interior of object.
Based on such awareness, Tae Yeun Kim does not force that humanistic, conscious and symbolic perspective, which defines the phenomena of macro-world, onto micro-world; instead, he directs it from the interior of substance or life to macro-exterior. So it would be inappropriate to see his inversed sense – the senses of the interior of micro-world – as being a small macro- world under a microscope. There’s no reversal; instead, there’s another human agency – another macro-world. Kim’s inversed perspective is not our view of micro-matters; rather, it is micro- matter’s view. So when we see Kim’s works, we should refrain from taking our own perspective to micro-world; instead, we should become elements in his works and feel them. The view from micro-interior is not a symbolic view like ours; it is closer to that direct sensation of body and subconscious.
The things which confuse us and create problems are mostly inversed situations. Lacan, Sartre, Levinas and many other episodes show that, when an object, which was just a thing to an agent, becomes another agent in one’s inversed perspective, like in Jones’ Aleutian Trilogy where the mechanic suddenly feels that a spanner is alive, we feel the inversed senses. Whether as an agent or other, whether a dead object or a living life, that itself does not pose a question to us. On the other hand, when the other becomes self, when the subject of identification becomes a problematic symbol which refuses identification, when object becomes life, or when life becomes object, we are thrown into confusion.
When Kim’s artificially-made objects seem as if they are alive, we feel that uncanny inversed sensuality. Those objects multiply and self-organize from within according to their own internal life logic; they also organically react with their selves and their surroundings, as well as the viewer, exhibition space and environment. That reaction appears to be internal and voluntary; it embraces the change in the organic interior and external space. Life is an organic matter which is capable of assimilating other objects and changing life and space to fit its purpose. Likewise, Kim’s objects, rather than merely as exhibited items like canvas or image, react to us entering the gallery and willingly huddle up in a corner. These are less arranged by the artist than positioned by themselves according to their wishes. While a human value assessment and signification would wish to see objects hanging in the middle of exhibition space as objects, the objects themselves would rather avoid such central exposure and instead huddle up together to defend themselves. Whereas Kim’s previous works explored the internal logic and formal conditions of life from within, the new works appear to have gone a step further by exploring voluntary reaction to the environment and the possibility of change in space and reality. At the same, although yet to be revealed in earnest, as detected in works using readymade glasses, it is significant to see that the possibility of allegorical work is also open. These works also make an issue of the boundary between non-visual things which exist, things which have influence but cannot be felt and things which can be felt but cannot be recognized.
For long, the artist’s mission was to sensually visualize ideal symbols through material. Here, the ability to do so and the ability to do so well have been the standard of good artist. Such demand will continue as long as art remains art, as long as image remains sensual and clear condensation of ambiguous experience, and as long as the power of image’s abstract concentration remains. At the same time, artists of today face an additional challenge; and with it, the traditional role of art has also changed. They must awaken senses are foreign and new – with a reason. These foreign senses make us feel that the objects and world we have always experienced are not what they seem; instead, they put us in problematic situations which we would not have experienced otherwise. In doing so, they activate new experiences and thinking. Thinking rarely goes against itself, but opens up the space for the emergence of other types of thinking. Thus art guides us to territories which are not given to us, territories which are given to us but which we cannot see. Here, what makes a good artist is the ability to clearly and intensively make space-temporal arrangement of senses so that those senses can be recognized as problematic situations. Then, Kim is a representative artist of our time, someone who is apt at making problems and foreign se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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